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주의 중심은 지구였고 인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천동설에 익숙해져 있었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론상으로만 주장했을 뿐이지 그 당시에는 관측 장비가 발달하지 않아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에 지동설은 여러 사람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 사람이 있는데 티코 브라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티코 브라헤의 절충설
티코 브라헤는 덴마크의 천문학자였습니다. 시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걸로도 유명해서 '인간 천문대'라고도 불렸습니다. 티코 브라헤는 새로운 별이 생겨난 것을 발견하여 천구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구와 달 사이의 영역에서나 변화와 소멸이 있을 뿐, 하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신봉했습니다. 즉, 새로운 별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었죠. 하지만 새로운 별을 관측함으로써 그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새로운 별을 관측하여 명성을 얻게 된 브라헤는 덴마크 왕의 후원으로 대규모 천문연구소를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그 후 각종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고 기록하여 방대한 자료를 남기게 됩니다.
티코 브라헤는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을 알고 있어서 여러 관측을 해보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서 절충설을 제안했습니다. 천동설만큼이나 지동설의 이론이 학문적으로 복잡했으며, 지구가 움직인다면 연주시차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때문이었습니다. 티코 브라헤가 주장한 절충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양 중심으로 태양계 행성들이 공전하며 동시에 지구를 중심으로 그 태양이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동설 이론이 복잡한 것은 그 당시에 행성의 궤도를 원으로 생각해서 나타나는 문제였고, 연주시차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관측 장비의 한계 때문에 미세한 관측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절충설은 틀렸지만 티코 브라헤가 남긴 방대하고 정확한 관측 자료들은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업적에 밑바탕이 되게 됩니다.
케플러의 법칙(Kepler's law)
요하네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와 함께 일했었습니다. 이후 티코 브라헤가 죽은 후 브라헤의 유언 덕분에 모든 관측 자료들을 넘겨받게 됩니다. 이런 방대한 자료들을 가지고 천문학자인 케플러는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으로 알려진 3가지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행성들의 궤도가 원이 아닌 타원으로 생각으로 아주 간단하게 설명되는 지동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케플러의 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타원 궤도의 법칙 : 모든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운동한다.
(2)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가상의 선분이 같은 시간 동안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항상 같다.
(3) 조화의 법칙 :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태양으로부터의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행성 운동의 정확한 시간표를 만듦으로써 주어진 한 시점에서 정확한 위치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라헤의 방대한 관측 자료를 기반으로 기하학적 도형과 조화라는 관점에서 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려고 하던 중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수학적 원리와 개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정확하게 몰랐던 것이죠. 케플러는 자신의 법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행성의 힘은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약하고 모든 궤도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체가 태양 가까이에 갈수록 빠르게 움직이지만 멀리 떨어진 경우에는 그 힘의 영향을 덜 받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나요? 바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바탕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케플러는 역사상 처음으로 행성의 운동을 거리로 설명하고 우주의 원리를 신의 뜻이 아닌 물리적 힘의 관점에서 해석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 "그래도 지구는 돈다"
드디어 이때 관측장비들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갈릴레이는 당시 막 개발되었던 망원경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망원경을 개량하여 성능을 높인 후 밤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류 최초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으로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천동설을 부정할 확실한 증거를 찾은 것입니다. 목성의 위성이 있다는 것은 목성을 중심으로 운동하고 있는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천동설에 의하면 모든 천체 및 행성의 중심은 지구이므로 목성에는 위성이 존재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천동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의 저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어쩔 수 없이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종교재판을 받고 일어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입니다.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100년의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옳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며,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정부와 시민에 대한 통제를 잃어 갔습니다. 이 세 과학자는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확립하고 이후 물리학이 전개되는데 기반을 세웠습니다. 특히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측하고 기록하였으며, 이론과 실험을 연결하여 새로운 학설을 확립했습니다. 물리학에 수학을 응용하여 이후에 모든 과학 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또 한 명의 천재는 과학 혁명을 완성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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